

[요약]
AI 기술로 용모를 복원한 무명렬사의 신원이 확정되었습니다.
타향에 묻힌 이 영웅은 바로 길림(吉林) 출신 렬사인 조선족 리일선(李日善)입니다.
최근, 복단대학(复旦大学) 법정과학연구원에서는 DNA 감정, 두개골 및 유물 복원 등 기술을 운용하여 한 무명렬사의 용모를 성공적으로 복원하였습니다.

당시 마적당(马迹塘) 전역에 참가한 전사들은 대부분 동북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이 단서를 바탕으로 호남성(湖南省) 퇴역군인사무청과 길림성(吉林省) 퇴역군인사무청은 일부 렬사 명단을 작성하였습니다.

전 과정은 국가렬사유해수색팀의 수색과 복단대학(复旦大学) 법정과학연구원의 기술 감정, 그리고 호남(湖南)·길림(吉林) 두 지역 퇴역군인사무청의 사료 공동 심의에 의거하였습니다.
모든 정보는 진실하고 정확하며, 허구나 억측 없이 권위 있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영웅의 본모습을 복원하였습니다.

리일선(李日善)의 고향은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왕청현(汪清县)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장백산(长白山) 동북쪽 기슭에 자리 잡아 첩첩이 우거진 림해가 아득히 펼쳐진 조선족 집성촌이자 붉은 혁명의 성지입니다.
이 산간 지역은 예로부터 민풍이 강직하고 의리와 용맹을 숭상하였으며, 일찍이 동북항일련군의 중요한 유격 근거지였습니다.
산맥마다 서려 있는 굳건한 정기와 준엄한 기풍은 대대로 기개 높은 청년들을 양육하였으며
1946년 11월, 해방전쟁이 전면적으로 폭발하고 동북 근거지 건설과 비적(土匪) 토벌 투쟁이 관건적 시기에 접어들었을 때
겨우 19세였던 리일선(李日善)은 의연히 입대하여 동북민주련군 대렬에 당당히 합류하였습니다.
장백산(长白山) 림해에서 출발한 그는 부대를 따라 남북으로 전전하며 북만주 비적(土匪) 토벌, 장춘(长春)과 심양(沈阳) 해방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 후 군대를 따라 관내로 진출하여 평진(平津) 전역에 참여하고 당구(塘沽)에서 다시 전투를 벌였습니다.
대군이 남하하여 장강을 건너 호남(湖南) 대지로 진격하는 동안, 그는 피와 땀으로 전공을 쌓아가며 일반 병사에서 해방군 제49군 147사 440단 경위련 련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1949년 8월, 호남성(湖南省) 도강현(桃江县) 마적당(马迹塘) 전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아군보다 병력이 훨씬 많은 국민당 수비군을 마주하였지만 장병들은 결사적인 항전으로 적의 공세를 막아냈으며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이겨내며 방어선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이로써 적군이 서쪽으로 도주하려던 계획을 와해(瓦解)시키고, 호남성의 평화적 해방을 위한 중요한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치렬한 전투 중에 300여 명의 동북 출신 장병들이 장렬히 희생되었으며
22세의 리일선(李日善)은 자신의 가장 찬란한 봄날을 상수(湘水) 기슭에 묻어둔 채
타향의 흙이 되어 무명 영렬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칠십여 성상(星霜), 이름 없는 무덤가에 서러운 바람만 스쳐 지났으나
그대의 붉은 넋은 단 한 순간도 잊힌 적 없었습니다.
장백산의 웅혼한 정기를 품고 대륙을 호령하며 보가위국(保家卫国)을 위해 바친 꽃다운 스물둘의 청춘당신이 흘린 뜨거운 선혈은 이 땅의 평화로운 산천으로 피어났으니
이제 국가와 인민의 가장 장엄한 경례를 받으소서.
영웅의 피와 혼으로 지켜낸 이 땅이 영원히 그대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의 소란함과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부디 평안히 영면(永眠)하시옵소서.
래원: 云上毕节 등 기사내용 다모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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