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만의 체험·성찰로 빚은 詩, AI는 못 넘봐”
김지은 기자
입력 2026-05-12 11:47
■ 신작 ‘당돌한 물음’ 펴낸 이상호 시인협회장
다섯달새 부모·아내잃고 상실감
망자들 꿈에나와 詩心 다시 꿈틀
“시인들 사기 높이기 앞장설것”

‘인공지능(AI)이 시인의 창작을 대체할 수 있는가.’ 우리 시대의 시인들이 모두 화두로 삼고 있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상호(사진) 시인은 11일 이렇게 답했다.
“시인이라면 책상맡에 앉아서 머리나 손끝으로 조작하는 기술을 부리기에 앞서 자기만의 체험을 성찰하는 데 힘쓰고, 양심에서 우러나온 정서를 살려낼 개성적 표현을 부단히 찾아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시로 빚는 경지만은 AI가 감히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 시인은 신작 시집 ‘당돌한 물음’(도서출판 넓은 마루 발행)을 최근 펴냈다. 표제작은 조물주에게 우주의 비의(秘義)를 감히 묻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생과 자연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시인이 시력 4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온 것이다. 시집을 보면, 그런 성찰과 사색으로 얻은 시 작품이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 짓눌렸던 그의 어깨를 가만히 어루만져줬음을 알 수 있다.
그는 2024년 후반기 불과 다섯 달 남짓 되는 시간에 청천벽력 같은 비극을 겪었다. 부친에 이어 아내, 그리고 모친이 잇달아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상실감과 죄책감을 씻을 길 없어서 한동안 아무 생각도 무슨 짓도 하기 싫었다. 시간이 흘러 이듬해 여름이 지나며 마음에 살짝 가을빛이 들고 시심도 꿈틀거렸다. 망자들이 꿈속에 찾아준 것이 큰 위로가 됐다. 그는 “문득 애도(哀悼)는 애도(愛道)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번 시집은 영령들의 뜨거운 격려와 더불어 존재에 대한 절체절명의 시간에 겪은 체험으로 빚은 작품이 상당량에 이른다.
‘망백 되도록 농사를 지으신 강철 로봇/무릎에 고장이 나면서 자식들 짐 될라//함께 떠나자고 날마다 조르셨다는/아버지//어머니 남겨두고/훨훨 날아가시자//너무 늦지 않으려고 뒤따라가신/어머니//평생 내려놓지 못한 당신들 짐작/새끼들 지지 않게 거둬가신 짐짝’(시 ‘지레짐작’ 전문)
‘꽃이 아닌데/피고 지는/꽃이 아닌데/꽃에 비기랴/그대 얼굴//겨울엔 겨울이라 뜨고/가을엔 가을이라 뜨고/여름엔 여름이라 뜨고/봄에는 봄이라고 뜨는//내 안 해….’(시 ‘해 같은 얼굴’ 일부)
한양대 명예교수인 이 시인은 교단에 서는 동안 후학 양성에 힘쓰는 한편, 창작의 본보기를 보였다. 1982년 등단 이후 11권째 시집을 펴내며 서정성과 사회성을 날줄과 씨줄로 교직하는 이른바 신서정(新抒情) 형식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는 현대 시의 부박함과 난삽함을 함께 경계해왔다. 운문은 반드시 언어의 절제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시학이 이번 시집에도 오롯이 담겨 있다.
한편, 지난 2월 27일 제46대 시인협회장에 취임한 그는 “그동안 협회 임원과 회원들께서 따뜻한 마음을 많이 보내주시어 처음의 설렘과 불안이 한결 가라앉았다”고 했다. 그는 협회가 한국 시의 흐름을 이끄는 수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인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젊은 시인들을 더 많이 협회에 영입할 구체적 대책을 세우는 한편, 시인들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봉사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지은 기자

김지은 기자
인물·조사팀 /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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